- 2018.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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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바이오벤처, 한한령 뚫었다.
아스타 600억원 계약…신약·진단·유전체 등 첨단기술엔 빗장열어
김소연 피씨엘 대표는 지난 1월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 JP모건 콘퍼런스에서 돌아오자마자 중국과 홍콩으로 출장을 떠났다.
이 회사는 홍콩·선전 주식시장에 상장된 중국 리주제약 자회사인 리주 진단과 1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김 대표는 "이달 상장을 앞둔 작은 바이오텍에는 큰 계약이어서 신경 쓸 것이 많았다"며 "리주 진단에서 우리 플랫폼 기술을 높이 평가해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자본금이 38억원인 국내 바이오기업 아스타는 중국 최대 민간 기업 중 하나인 포선(Fosun)그룹을 상대로 600억원 규모 계약을 따냈다.
지난해 11월 협상을 시작한 지 두 달여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진 계약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던 협상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가 발목을 잡을 뻔했다.
아스타 관계자는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포선 측이 협상을 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려울 때 관계를 맺어야 진정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하며 계약을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한한령(限韓令)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감하고 수출에 차질이 빚어지는 등 한중 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가운데, 기술력을 앞세운 토종 바이오벤처들이 잇달아 의미 있는 계약을 따냈다.
중국 제약사와 바이오기업들이 한국 바이오 산업에 관심이 많은 데다 정부도 신약 후보물질 발굴 등 미래 기술을 도입하는 계약에 대해 적극 지원해주는 분위기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생물 진단분석기를 개발해 판매하는 아스타가 지난달 20일 중국 최대 민간 기업 가운데 하나인 포선그룹과 600억원 규모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1992년 중국 상하이에서 컨설팅회사로 시작한 포선그룹은 현재 총자산 4050억위안(약 68조5000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자본금이 38억원 규모에 불과한아스타 최고경영진은 과감히 포선그룹의 문을 두드렸다
전 세계에서 5곳만 보유하고 있는 말디토프(MALDI-TOF) 질량분석기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계약으로 아스타는 포선 측에서 5년간 최소 400대 이상 판매를 보장받았고 올해 합작법인까지 설립하기로 했다.
아스타 관계자는 "현재 8000개 이상 미생물 데이터와 2000개 이상 암환자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합작법인을 통해 임상 데이터를 꾸준히 쌓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중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는 아스타는 공모를 통해 350억원 이상 운영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독자적인 진단 플랫폼을 보유한 피씨엘의 파트너가 된 리주 진단은 주하이(Zhuhai)에서 가장 큰 진단회사로, 중국 전역에 유통망을 확보한 중국 진단 분야 10위권 회사다.
혈액원 스크리닝을 위한 고위험군 바이러스 제품(중국 내 3위) 등 자체 생산 제품뿐 아니라 수입 제품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자가면역 진단키트를 개발하기 위해 피씨엘과 손잡았다.
피씨엘 플랫폼으로 진단키트를 개발할 수 있도록 기술을 이전하는 계약으로 마일스톤(milestone) 방식으로 진행된다.
자가면역 진단칩을 개발하는 6개월 동안 피씨엘은 약 100억원 규모의 기술이전과 생산설비 시설을 공급한다.
김 대표는 "기술이전료 외에도 향후 키트 판매량에 따라 로열티를 받을 예정"이라면서 "키트 개발은 70% 이상 완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유전체 분석 전문기업 메디젠휴먼케어는 업계 최초로 이르면 이달 중 중국 포털 바이두에 입점한다.
고객이 직접 검사 제품을 구매하고 결과를 받아볼 수 있는 DTC(Direct to Consumer) 서비스로, 바이두를 사용하는 중화권 시장 전체를 타깃으로 한다.
신동직 메디젠휴먼케어 대표는 "16~20일께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며 "바이두 직원만 6만5000명이고 가족까지 합하면 15만명이 넘기 때문에 최소 물량은 확보하고 가는 계약"이라고 설명했다.
메디젠휴먼케어는 검사 결과 보고서에 중국인에게 맞는 식이·운동 전문가의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결과에 따른 유료 식단 제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운동기구, 국내 건강검진센터 방문 등 마케팅까지 연계할 예정이다.
작년 말 중국제약사 RMX파마와 240억원 규모의 항생제 신약 후보물질 기술이전 계약을 맺은 레고켐바이오의 김용주 대표는
"중국 정부가 신약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생각하고 전폭적인 지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시장과 함께 간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면 충분한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찬옥 기자 / 윤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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